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란시스코 프랑코 (문단 편집) === 심화된 지역 갈등과 분리주의 === 프랑코는 현재의 지역분리에도 책임이 있다. 폭탄테러 등으로 스페인을 괴롭힌 [[바스크]] 지방의 [[ETA(바스크)|ETA]]를 필두로 한 테러리즘, 그리고 독립 선언을 한다 만다 하는 [[카탈루냐]]의 분리주의 운동은 역사적으로 프랑코 이전에는 전례가 없었다. 분리주의라 해도 스페인 내에서 자치권의 확대와 보장을 요구하는 훨씬 더 온건한, 중앙에서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소수의 지식인들과 산업가들 중심의 지역주의 운동 수준에 가까웠다. 원래 역사적으로 스페인이란 나라는 이베리아 반도의 이슬람 세력에 맞선 여러 가톨릭 왕국들의 동군연합에 뿌리를 둔 나라다. 때문에 이웃 프랑스와는 대조적으로 지방 자치 전통이 뿌리 깊게 박혀 있었으며, 중앙 또한 이를 대체적으로 존중하고 합리적으로 교섭을 하는 게 전통이었다. 스페인 각 지방들의 사법적, 정치적 통합은 카탈루냐의 경우 18세기 중반, 바스크 지방은 19세기 후반에야 이루어졌다. 당연히 통합 이후에도 자국어 사용같은 시시콜콜하면서도 민감한 문제로 지방을 건드리는 일은 별로 없었다. 이렇다 보니 지방의 민족주의, 독립 분리주의 운동들도 지식인, 중산층 사회 밖으로는 파급력이 제한되어 21세기 현재 스페인 자체의 통합에 위협이 될 만큼 힘이 강했던적은 드물었다. 바스크, 나바라 기반이었던 [[수구주의]] 카를리스타 운동도 기반이 그쪽 지방과 지방 자치 수호였다는거지 훗날 ETA의 테러가 대표한 본격 분리 독립이 아니었고, 1934년 헌정 위기 사태 중 [[카탈루냐 공화국]]을 선언했던 자치정부(Generalitat) 수반 유이스 콤파니스는 그 뒤 "스페인 연방 내"라는 조항을 덛붙였었다. 그리고 세간에서 종종 카탈루냐 민족주의 운동으로 착각하기도 하나, 내전 당시 그 지역을 휩쓴 [[아나키스트]] 혁명과 자치공동체들은 카를리스타와 마찬가지로 '''지리적 기반이 카탈루냐, 아라곤이다 보니 그 지역 사람들이 중심이 된''' 운동이었지, 원칙적으론 이베리아 반도 전역의 해방을[* 괜히 CNT의 이데올로기적 보조 조직인 FAI가 Federacion Anarquista '''Iberica'''가 아니다] 주장했던 [[탈민족주의]]적 국제주의 좌파였다. 카탈루냐 아나키즘의 경우 오히려 인구 기반이 상당수 카스티야, 안달루시아에서 흘러온 국내 이민 노동자들이었고[* 당장 아나키즘이 주도했던 1910-30년대 스페인 노동운동의 성장은 안달루시아-바르셀로나 공업지대 사이 국내 인구 유출의 역사와 지역적, 시기적으로 상당부분 일치한다. 즉, 평소에는 바르셀로나 아파트에서 생활하던 안달루시아 출신 노동자들이 농번기 되면 고향에 돌아가 주로 소작농 출신 가족 일 도우면서 사상 전파도 하고, 이런식으로 안달루시아 라티푼디움 농촌과 카탈루냐 공업지대 양 지방이 당시 스페인 급진 좌익 운동의 본거지로 성장했던 것이다], 사상적으로도 민족주의와 확고하게 반대되다 보니 카탈루냐 민족주의 성향 부르주아 자유주의 정당, 정치인들과 치열하게 대립하며 카탈루냐 민족주의를 '부르주아들의 처량한 애국놀이'[* patrioteria, 스페인어로 '바보짓'이란 단어인 tonteria의 말장난으로 CNT 당지인 '노동자 연대 (Solidaridad Obrera)' 등에서 종종 사용했던 표현이다], '사자(스페인 중앙정부)가 없는 자리를 대신 꿰차려는게 너무나도 뻔히 보이는, 동네 폭군을 꿈꾸는 여우' 라 부르며 격렬하게 대립하는 관계였다.[* 레닌 시절부터 민족주의 담론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하고 전략적으로 연대하려고 했던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스탈린주의]]자들과 달리 아나키즘 진영은 적어도 유럽과 북미 같은 눈앞에 대적한 실존적 정치적 문제가 식민지 현실이 아니었던 곳에서는 민족주의 조류 일체에 대해서 상당이 일관적으로 비타협적 모습을 보였던 편이다. 소위 '방어적 민족주의', '피압제민족의 민족주의'도 결국 본질적으론 위험하고 폭압적인 사상으로 보고 배격하는 조류는 애초에 스페인내전 20년전 [[네스토르 마흐노]] 시절부터 일찍 자리잡았고, CNT 또한 프랑스로 망명온 마흐노주의자들과 교류하며 이런 입장을 건지하며, 21세기 작금까지도 [[카탈루냐 독립운동]]에 관하여 '폭압적인 방법으로 대응하는 프랑코 정권의 후계자' 중앙 정부도 욕하지만 카탈루냐 민족주의 세력도 여전히 동네왕초를 꿈꾸는 또다른 악에 불과하다는 양비론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그런데 프랑코는 정권을 잡은 이후 오직 [[카스티야어]]만 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고는 현지에서 일상 언어로 수백 년간 사용된 [[카탈루냐어]], [[바스크어]], [[갈리시아어]]를 제한도 아니고 금지했다. 그리고 공권력을 동원해 스페인 역사상 유례 없는 탄압을 가하며 중앙에 대한 복속을 강요했다. 카탈루냐나 바스크 지방은 제국의 먼 식민지도 아니었고 현대 스페인의 중심인 카스티야와는 독립적인 정치적, 사회적 집단으로 존속해온 땅으로 자국 땅에서 뿌리 없는 강제동화정책의 대상이 될 만한 곳이 아니었다. 이 시절의 기억은 현재도 [[빌바오]]나 [[바르셀로나]]의 중장년층 사이에 남아있다. 젊은 시절 거리에서 자연스럽게 모어인 바스크어나 카탈루냐어를 사용했다고 해서 헌병대에 끌려가 뺨때귀 맞은 이야기를 자주 들을 수 있다. 자기네 땅에서 이런 유례없는 탄압과 강제동화정책을 40년 가까이 겪으며 산 이 지방들은 프랑코 정권 말기 독재자가 죽을 기미가 보이자 아예 스페인이란 나라 자체에 질색을 하게된다. 그리고 폭탄이나 로비, 여론을 통해서 노골적인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급진적 방향으로 선회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